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케메네스 왕조 (문단 편집) == 경제 == '''당대 세계 최고의 경제 대국.''' 페르시아는 정말 부유함 하나만큼은 당대 국가들 사이에서도 압도적일 정도로 경제력이 끝내주는 나라였다. 중국은 아직 전통적인 근거지인 [[중원]]에서도 제대로 벗어나지 못했고 풍요로운 강남 지방은 늪지대에 불과했다. 유럽은 말할 필요도 없이 제대로 문명이 세워지지도 못한 야만인들의 땅이었고, 그나마 [[인도]] 정도가 대응할만 했지만 인도조차도 수많은 군소 왕국들로 쪼개져 있었고 그나마 페르시아에 대응할 수 있을 정도로 뭉친 정치체인 [[난다 왕조]]와 [[마우리아 왕조]]도 페르시아 말엽~멸망 이후에나 등장했다. 정말 인류의 여명기부터 발전을 거듭해온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등을 모조리 장악한 페르시아에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즉 이 당시 페르시아 제국은 압도적인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이었다는 것이다. 페르시아 경제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들 중 하나에는 '''왕의 길'''이라고 불리는 교역로가 있었다. [[페르시아 왕도]] 항목을 참조하는 것도 좋다. 육상에는 왕의 길이 있었다면 해상에는 당시 지중해 무역을 주름잡던 [[페니키아]] 상인들이 있었다. 페르시아가 세워지기 이전부터도 이미 지중해 무역을 꽉 잡고 있던 노련한 상인들이었던지라 페르시아 제국 시대에도 페니키아 대상단들이 활동했다고, 참고로 [[팔레스타인]]의 특산품은 [[렌틸콩]], [[머스타드]] 같은 주식이었고 [[바빌로니아]]에서는 [[밀]], [[참깨]], [[사과]], [[꿀]], [[대추야자]] 등을 재배했으며 [[시리아]]나 [[아르메니아]]에서는 [[포도주]]가 특산품이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800px-Tribute_in_the_Achaemenid_Empire.jpg|width=100%]]}}}|| ||<#AC0D0A> '''{{{#FED600 헤로도토스의 자료에 추정한 각지의 세수 비교. 당시 페르시아는 지역 경제력에 기반해 세금을 매겼기에 세수의 양이 곧 경제력이라고 볼 수 있다.}}}''' || 페르시아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다리우스 1세]]는 제국의 세수구역을 총 20구역으로 나누었다. 1구역은 [[이오니아]], 2구역은 [[리디아]], 3구역은 [[트라키아]]와 [[아나톨리아]] 서부, 4구역은 [[킬리키아]], 5구역은 [[아시리아]], 6구역은 [[이집트]], 7구역은 [[간다라]], 8구역은 [[수사(도시)|수사]], 9구역은 [[바빌로니아]]를 포함한 [[메소포타미아]], 10구역은 [[엑바타나]]와 [[메디아]], 11구역은 [[코카서스]], 12구역은 [[박트리아]], 13구역은 [[아르메니아]], 14구역은 이란 서부의 사르가티아 지방, 15구역은 사카에와 카스피 해 지역, 16구역은 [[파르티아]], 17구역은 [[발루치스탄]], 18구역은 이란 북부, 19구역은 [[히타이트]] 등 지중해 동부 연안 지방, 20구역은 [[인더스 강]] 유역이었다. 이렇게 총 20개의 지방에서 막대한 세금을 걷어들였지만 가장 부유한 지방은 [[인더스 강]] 유역이었다. 다리우스 1세가 정복하면서 페르시아에 편입된 영토로, 이 인더스에서 거둔 세금이 제국 전체 세수의 32%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그나마 제국에서 두 번째로 부유한 구역이 바빌론을 포함한 메소포타미아 구역이었는데 여기서 나오는 세금은 전체 세수의 9% 정도였다. 인더스 강 유역에서 거두는 세금의 3분의 1도 안됐다는 소리. 다리우스 1세의 세수 목록을 살펴보면 인더스에서 거둔 세금은 1년에 총 360 에우보이아 [[달란트]]의 금가루. 1 에우보이아 달란트가 약 26kg인 걸 생각해보면 '''매년 9,360kg에 달하는 금을 인도에서 쓸어갔다는 이야기'''다. 이 외에도 은과 귀중한 보석들, 거기에 지역의 특산물들까지 걷으면서 엄청난 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게다가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 페르시아는 인더스 지역을 다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정도의 수익을 얻은 것이다.] 페르시아가 이같은 엄청난 부를 기반으로 발행했던 것이 그 유명한 페르시아의 금화와 은화들이다. 그러나 그 명성에 무색하게도 페르시아 지방은 본디 금화라는 개념이 생소한 지방이었다. 그러나 [[키루스 2세]]가 나라를 넓히던 중 [[리디아]]를 정복했는데, 이 리디아는 당시 왕이었던 크로이소스의 지시로 세계 최초의 금화를 주조해 쓰던 나라였다. 리디아를 정복한 키루스 2세는 금화가 그럴듯해 보이자 곧바로 이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아직 화폐 주조가 익숙치 않았기 때문에 리디아가 쓰던 사자와 황소 문양을 그대로 새겨넣었고, 금화의 중량 역시 10.7g으로 리디아의 것을 그대로 차용했다.[* 이 10.7g의 중량은 '페르시아 단위'라고 해서 후일 그리스 화폐 중량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아나톨리아 정복을 완료한 키루스 2세는 서부의 핵심 대도시 [[사르디스]]에 조폐창을 설치, 수많은 금화와 은화들을 찍어냈으며 물물교환이나 기껏해야 은덩어리로 거래를 하던 당시로서는 혁신적 기술이었던 화폐 덕에 페르시아 경제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